42.195km 마라톤을 한 적이 있다. 참가자는 124명. 나는 86등 꼴등이었다.
마라톤은 2020년 6월, 청주 무심천에서 했다. 마라톤 하프조차 뛰어보지 못한 나는 풀코스 참가 신청을 하였다. 연습은 집에서 가까운 스포츠센터 운동장에서 했다. 마라톤 1주일 전 운동장에서 2시간 30분 달리기 연습을 했다. 연습이 끝나고도 힘이 남아돌았기에, ‘뭐 이 정도면 풀코스 정도는 뛰겠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더 이상의 연습은 하지 않게 되었다.
경기 날이 다가왔다. 나는 돈을 아끼고자 모텔이 아닌 찜질방에서 잤다. 인생 첫 마라톤이라 그런지 잠에 잘 들지 못했다. 새벽 3시가 지나서 잠이 들었다. 그마저도 5시에 흥분한 마음과 함께 일어났다. 풀코스 출발 시각은 7시 30분이었고 준비를 위해, 마라톤 출발점인 무심천으로 향했다.
6시쯤 도착한 무심천에는 일찍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놀라웠던 점은 대부분이 40대가 넘어 보였다. 누가 봐도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사람과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됐는데, 그분은 100km를 뛰어 본 강자였다. 내가 처음 마라톤에 도전한다고 하니, 페이스 조절 잘하고 30km쯤 조심하라고 알려주었다. 풀코스 출발 시각인 7시 30분, 경기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뛰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빠르게 달려나갔다. 나는 완주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페이스 조절 차 속력을 내지 않았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멀어지기 시작했다. 조급함이 생기기 시작했고 ‘나 너무 천천히 뛰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급함은 나의 페이스에 불을 붙였다.
나는 속력을 올리기 시작했고, 앞서가던 몇 사람을 추월했다. 이때까지는 체력이 남아돌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5km, 10km, 15km를 지나고 20km 반환점에 도달한 순간, 한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하 X발 X됐다.’
과도한 페이스로 인해 내 체력은 급격하게 저하됐었다. 반환점을 돌고 남은 20km를 뛰어가며, 계속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하프는 뛰었으니, 그냥 포기하고 하프 메달이라도 달라고 할까?’ 온갖 갈등 끝에 25km를 지났다. 그때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내 다리 근육은 더는 갈 수 없다고 나에게 소리쳤다.
하나둘 사람들은 점점 나를 추월했다. 30km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는 나의 상의는, 물에 들어갔다 나온 듯 젖어있었다.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며, 반환점을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파이팅!”하고 외치며 격려 인사를 했다. 사실 이 격려의 인사는 나를 향한 것이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어, 억지로라도 텐션을 올리기 위함이었다.
27km쯤 지났을 때, 한 명이 나를 추월했다. 내가 꼴찌가 되었다는 것을 이때는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30km 반환점에 도달했고, 거기에 있던 직원분은 물과 포도당을 주며 힘내라고 격려했다. 반환점까지만 뛰고 걸을 계획이었는데, 직원분이 격려해주셔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만 뛰고 걷기 시작했다.
마라톤을 뛰는 사람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발바닥은 걷고 뛸 때마다 터질 것 같았다. 종아리는 비명을 질렀다. 마라톤 제한 시간은 5시간이었다. 30km를 3시간 50분에 도착한 나는, 절대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걷고 뛰고를 반복했다. 2.5km마다 물을 제공했던 부스는, 5시가 넘으니 철거되고 없었다. 정오가 넘어가면서부터 햇빛은 점점 나를 짓눌렀다. 극도의 피로는 헛구역질을 유발했다. 강가에서 뛰었기에 도로 주변은 차도였고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택시 타고 갈까? 아무도 모를 거야’
어차피 나는 탈락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한다면 나는 ‘완주’라는 타이틀도 얻지 못할 것이었다. 또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마라토너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한 게 계속 떠올랐다. 팔을 흔들면서 걸으면 온몸이 삐걱거려 허리에 손을 얹고 걸어가는 중이었다. 뒤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 길을 비켜줬는데, 그 자동차는 내 옆에서 멈췄다. 검은색 미니밴이었다. 창문을 내러 가고 안에 있던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제한 시간 지났고 지금 사람들 정리하고 있어요. 데려다줄 테니까 타요.”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나는 관계자에게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 없어요. 제한 시간이 넘어도 상관없습니다. 걸어서라도 완주는 할 겁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이 마라톤은 나와의 싸움이었다.
관계자는 한 번 더 나에게 물어본 뒤, 내가 똑같이 대답하자 수고하라고 말하고 골인 지점을 향해 갔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나는 생각했다. ‘아 탄다고 할걸 ㅋ’
금방이라도 눕고 싶은 몸을 가누며, 골인 지점에 도착했다.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성취감이 온몸을 자극했다. 골인 지점을 지날 때, 만세를 하며 지나간 것은 안 비밀이다. 마라톤 관련 부스는 이미 철거한 상태였고, 관련 스태프는 딱 2명이 남아있었다. 도착하니 차를 타고 나에게 왔었던 관계자가 나를 반겼다. 그는 내가 맡겼던 짐과, 달리기를 한 사람에게 주는 빵과 음료가 담긴 비닐봉지를 주면서 수고했다고 말했다. 제한 시간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에게 메달은 없었다.
“그래도 하프는 뛰었는데, 하프 메달이라도 주시면 안 돼요?”라고 말하려 했는데, 자존심 때문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챙겨주셔서 감사하다”라는 말을 하고 가까운 벤치에 앉았다. 아니 누웠다. 누운 채로 비닐봉지에서 빵과 음료를 꺼내는데-
-비닐봉지 밑쪽에 가려진 메달이 보였다. 풀코스 완주 메달이었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6시간이 넘는 고난에 대한 보상이었다.
마라톤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풀코스 참가자 기록을 보았다. 나의 풀코스 완주 시간은 ‘확인중’이었다. 등수는 86등 완주자 중 꼴등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꼴등은 아니었다. 풀코스 참가자는 124명이었기 때문이다.
찌는 듯한 더위,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 그리고 온몸이 삐걱거리는 상황은 6시간 만에 2.5kg을 감량시켰다. 이런 혹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찜질방에서 3시간 정도의 잠을 자고, 페이스 조절을 하지 못했다. 다리 근육은 부족했다. 마라톤을 하며 미친 듯이 포기하고 싶었지만, 나는 걸어서라도 완주했다. 비록 제한 시간을 초과했고 꼴등이었다. 하지만 풀코스 완주자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메달을 받았다. 내가 포기했더라면 얻지 못할 것들이었다.
나는 비록 꼴등을 했지만, 풀코스를 완주했다는 성취를 이뤘다. 이 성취는 나에게 42km 완주자라는 타이틀을 줬을 뿐만 아니라, 막대한 자존감까지 주었다. 또다시 마라톤을 도전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되었다.